프랑스 명품 자동차, 히스파노 수이자의 몬자와 불로뉴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년이 흐르자 유럽 전 지역은 장거리 여행의 새로운 유행이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히스파노 수이자사는 일부 스페인 공장만 남겨두고 파리로 이전하였습니다. 이후에 두 대의 유명한 히스파노가 생산됩니다. 그것은 바로, 몬자(Monza)와 H6을 승계하여 지명 이름을 붙인 불로뉴(Boulogne)입니다.
먼저 '몬자'는 1922년에 전통성 있는 이태리 몬자 그랑프리 경주에 출전하여 승리하면서 몬자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시속 160Km에 거대한 80의 V-8실린더 엔진을 사용한 46CV '불로뉴'는 그 뒤에 출시된 것으로 1923년 조르주보알로(GeorgesBoillot)컵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습니다. 다음 해 11월, 히스파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벤트리팀의 주역 드라이버인 울프 바나토(Wolf Barnato)를 불로뉴의 브룩크랜드 경주에 참가시켰습니다. 그는 그 경기에서 평균 시속 148.3Km로 주행했습니다.
이 차는 곧바로 미국의 인디아나 폴리스로 날아가게 됩니다. 16실린더의 핼리밀러 엔진을 사용하고 보디 설계자는 프레드릭 모스코 빅스인 스튜츠 블랙호크와 24시간 동안 치열한 스피드 대결을 벌여 승리를 거머 줬습니다.
블랙호크는 운행 도중 기계 고장으로 포기해야 했습니다. 평균 시속은 113Km이었으며 유럽차의 성능을 세상에 재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자동차 애호가로 소문난 앙드레 듀보네(Andre Dubonnet)는 히스파노를 구입하였으며 파리-니스 레이스에 도전하여 12시간 56분 만에 주파하며 우승하였습니다. 또한 앙드레 듀보네는 이 차와 함께 역사 깊은 타르가 프로리오에 출전하여 우수한 경기력으로 입상권에 들었습니다.
한동안 미국의 유명 자동차 브랜드들은 히스파노를 모방하였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예로는 1929년 출시된 케딜락 라셀과 시보레의 디자인에 히스파노의 느낌이 납니다.
히스파노는 계속해서 최고급 모델을 발표합니다. 바로 그 결과물인 220마력의 V-12실린더 배기량 9.40엔진을 실은 1926년형 히스파노 68은 최고 시속 160Km에 운전하기 편리한 핸들 조향장치를 갖추었고 스페인과 프랑스가 5년 동안 공동생산하였으나 카탈로그에는 프랑스에서 전부 만든 것처럼 소개되었습니다.
그 얼마 후 68 후속으로 나온 쿠페형 68B는 V-12실린더 250마력에 배기량 11.30 엔진을 장착하였고 최고 시속 175Km로 달리며 뛰어남을 과시했습니다.
히스파노의 황금기
이 시기가 히스파노의 황금기였습니다. 당시 광고에 실린 문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히스파노 수이자는 자동차의 여왕이다." 이처럼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하여 히스파노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히스파노의 유명세가 거듭되자 프랑스에서는 히스파노를 주제로 하는 최초의 자동차 영화도 제작하였습니다. 제목은 <히스파노를 탄 사나이>입니다.
프랑스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시대가 왔을 당시에, 스페인 공장에서도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였고 그것은 지명을 따 만든 4기통, 6기통의 「바르셀로나」였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제 히스파노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스파노 수이자의 연도별 생산을 하였고, 그 종류로는 1924년 H6C, 1928년에는 32CV와 42CV, 1931년 Jiz 그리고 1935년 K6가 출시되었습니다. H6C 시리즈는 1929년까지 생산되었습니다. 또한 1931년부터 9.5ℓ의 V-12실린더 엔진을 생산하였습니다. 이것은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V-12S 항공기 엔진으로 개조되어 1938년까지 공급되었습니다.
그러나 1936년 스페인 내란이 발생하면서 그 영향이 프랑스까지 미쳤습니다. V-12실린더 엔진 제작을 마지막으로 1938년 프랑스 공장은 자동차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당시 히스파노는 자국 공군 주력 항공기 엔진 생산에만 집중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히스파노
1939년 9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피해를 주었던 전쟁이었습니다. 프랑스도 연합군과 협력하여 활약하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때 제공권을 잡았던 명성 높은 히스파노엔진의 전투 기기는 모란느(Morane) 406과 드보아틴을 개량을 거듭해 향상된 독일바이에른 항공기 제작회사의 포케울프 FW190나 메샤슈미트 BF109를 따라잡을 수 없어 밀리고 맙니다.
당시 히스파노엔진과 다이믈러엔진의 성능을 비교해보면 출력은 910마력 vs 1000마력, 속력은 485km/H vs 560 KmH의 차이를 보입니다. 이것은 히스파노의 기술이 뒤떨어졌다고 보기보다는 독일의 기술력이 매우 앞섰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1944년 마침내 히스파노의 스페인 공장도 문을 닫았습니다. 스페인 · 스위스 · 프랑스 이 세 나라가 만들어 낸 자동차의 걸작 또는 극심한 사치의 상징인 히스파노 수이자는 세계 어느 승용차와도 견줄 수 없는 세계 최고급 승용차로써 여유와 풍요로움, 그리고 향락과 멋을 즐겼던 귀족이나 부호들의 전유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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