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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명차 브랜드 드라이에에서 인수한 드라즈
    세상의 자동차 이야기 2021. 9. 6.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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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즈 1929년

     

     

    프랑스 명차 브랜드 드라이에에서 인수한 드라즈(Delage)

     

    프랑스 명품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드라이에는 1935년에는 그 명성이 역사에 길이 남을 브랜드인 드라즈(Delage)를 인수하였습니다. 드라이에는 드라즈와 함께 다채로운 고급차 생산을 시도하였습니다. 드라즈사는 1905년 루이 드라즈가 푸조사에서 일하던 기술자 루그로와 함께 르발루아 뻬레에 창설한 고급차 브랜드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드라즈사가 주로 소형차 제작을 맡아 잘 알려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렇지만 1911년부터 다양한 형태의 모델을 도입하면서부터, 1913년에는 프랑스 자국 그랑프리 대회 데뷔전에서 모델1913(4기통/105마력/수평 4밸브/배기량 7032cc/2300RPM/5단 변속/최고속도 160Km) 두 대를 출장시켜 첫 우승을 획득하였습니다. 이 우승을 기점으로 드라즈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1914년 미국 인디아나 폴리스 대회에서도 1등과 2등을 각각 차지하면서 '드라즈'라는 그들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떨치며 알렸습니다.

    드라즈차는 특별히 연습장이 마련되지 않았던 당시 파리 근교에 있는 몬트래 경주장에서 주행테스트를 마쳤습니다. 드라즈차는 그 후에 몇몇 경주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며 특별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1924년에 자국인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알파 로메오 다음으로 결승점을 통과한 것이 이슈가 되었고, 1925년에 열렀던 유럽 레이스와 1927년에 오픈한 유럽 그랑프리 챔피언 그리고 1929년 미국 인디아나 폴리스에 루이 시롱이 출전하였습니다. 이를 끝으로 드라즈사의 자동차 경주 활동들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고급차로서의 어필하기 위해 노력한 드라즈

     

    이런 자동차 경주 성적으로 얻은 명성과는 다르게, 드라즈는 일반 승용차에 있어서는 1920대 중반까지 나름데로 인기를 끌었으나, 크게 고급차로서 어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미지 쇄신을 하기 위하여 앙리 샤프롱(Henri Chapron)을 초청하였습니다. 하지만 드라즈는 고급차로서 명성이 높아 갈쯤에 최고를 추구하다 경영난으로 도산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즈는 유명한 대표작들을 출시해었습니다. 1929년에 우아함과 스포터함을 겸비한 드라즈 모델 D-8(2인승 OHV 8기통4050cc엔진, 120마력)과 1931년 보급형 D-6(배기량 3045cc,72마력 엔진), 그리고 193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린 드라즈 드빌이 특히 유명합니다.

    그 중 드라즈 드빌은 마치 고귀한 귀부인처럼 멋들어진 차였습니다. 이 드라즈 드빌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자면 1930년대 개최된 멋내기 대회였던, 즉 1925~35년 사이에 열렸던 프랑스 제일의 멋진 자동차 선발대회로 외무성 의전실장이 심사관이었으며 자동차 디자인 뿐만 아니라 여자와 자동차의 결합이 맵시와 조화를 이루어야 당선되었던 그 대회에서 당당 대상을 차지하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드라즈라는 그 이름만 들어도 흥분을 감추지 못할 최고급차로 변신했습니다.

     

     

    세계대전과 드라즈

     

    이와 함께 드라즈의 이미지를 살려주었던 또 다른 특징으로 엠블럼 드라즈 1929년은 피리부는 아이의 모습이 담겨있어서 한가로움 마져 느끼게 합니다. 그 얼마후에는 드라이에 산하에서 탄생한 6기통 3000cc의 드라즈 콘페디숑(1937년 제작)도 변함없는 인기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광의 세월도 잠시 독일 베를린에서는 온갖 군수물자가 수송되고 있었고, 이것들은 인류는 물론이고 드라즈에도 엄청난 재난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2차 대전을 겪고 난 뒤 불황으로 인한 경제위축은 계속되었습니다. 작은 기업이 점차 사라지자 프랑스 당국은 값비싼 소비재를 줄이기 위해 고가차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였습니다. 때마침 출고된 드라즈의 175 컨버터블(1947년 피고니와 팔라시 설계)과 최후의 모델이 된 235는 애석하게도 판매에 부진을 면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드라이에사도 경영 합리화를 위해 1954년 호치키스사와 합병하며 이전의 명성을 되찾으려 했으나 운이 따르지 않자 산업계로 눈을 돌려 화물차 생산을 하다 이제는 그 이름만 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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