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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자동차 이야기

프랑스 브랜드 자동차의 역사 드라이에의 황금기

by 핑크맨 2021. 9. 5.

드라이에 피고니에 팔라시 135M

 

 

프랑스 브랜드 자동차의 역사, 드라이에(DELAHA YE)


드라이에 피고니에 팔라시 135M이 출시되면서 프랑스에서 최초로 새로운 이미지의 고급 자동차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에밀 드라이에 (Emile delahaye)는 1890년에 프래튼 기계공장을 매입하여 자동차 제작회사로 개조한 4년 뒤 벤츠의 차를 모방한 첫 차를 출고시킴으로써 자동차 역사와 함께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는 파리에서 르왕, 파리에서 보르도 간의 경주가 한창 열기를 띄었습니다. 그래서 1896년에는 파리-마르세이유-파리 구간의 경주에 드라이에 차도 출전했으나 4위로 진입해 순위에는 들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계속 경기에 참여하였고, 파리에서 니스, 파리에서 디에프간 경주에 연속 참가한 결과 바라던 첫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습니다.

드라이에는 1898년에 다시 공장을 파리로 옮긴 후 1900년까지 생산량을 연간 35대로 높였으며, 1903년에는 4기통 드라이에가 탄생하였습니다. 4기통 드라이에 모델의 강력한 힘과 스피드에 반한 구매자들의 구매 문의로 판매고가 치솟았습니다. 그래서 1907년부터 독일(프로토스사)과 미국(화이트사)에서 계약생산을 할 만큼 발전했습니다. 이후에 다시 회사를 샤를르 베인바하이진으로 확장하였고, 1차 대전 전까지 순조롭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차대전 전쟁이 터져 승용차보다 군수품을 생산하는 것이 의무가 되었고, 새로 생산된 군수품은 성능 테스트도 못한 채 전쟁터로 동원돼야 했습니다.

 

 

세계 전쟁 이후의 '드라이에'의 행보

 


전쟁이 끝나고 1920년대 들어서면서 드라이에는 별다른 발전이 없었고, 그러는 가운데 각국에서 수많은 명차가 발표되자 드라이에 브랜드는 관심 밖의 차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이에 완전히 밀려나지 않았고 1930년대 자동차 황금기를 맞이하면서 고성능의 차를 생산해 냈습니다. 1933년에 드라이에는 OHV의 직렬 6기 통 3.20 엔진을 탑재한 앞바퀴 독립현가식의 슈퍼 르 쿠스를 생산하였습니다. 그다음 해에는 화제의 중심이었던 스포츠카 모델 135는 프랑스 자국 몽 랠리 경주에서 이틀 동안 평균 시속 172Km로 달리며 18개 부문에서 국제 기록을 수립하였습니다.

그리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이태리인 디자이너 피고니(Figoni)와 팔라시(Falaschi)가 드라이에사에 합세하면서 1936년 공동 설계한 앞모습은 날아갈 것 같고 뒷모습은 비단처럼 부드러운 선을 가진 모델 135M피고니에 팔라시를 전시하며 유체 역학의 진수를 느끼게 했습니다. 그 후 피 고니와 팔라시는 탈보사 제품인 탈보라고에도 그들의 역량을 발휘하였습니다. 이들의 힘을 빌려 드라이에 사는 1937년에 이국 적풍의 독특한 모델을 발표하였습니다.

1937년에 발표된 이 차는 유명한 3.5ℓ 160마력의 모델 135M으로, 당시에 크게 대박이 나자 이듬해에 135M 토르패도와 135콘페디송(6기 통 3550cc 160마력 4200 RPM)이 그 인기를 이어갔고, 그리고 135MS(최고 시속 192Km)로 이어졌으며, 그중 135MS는 반댄 프라스(Vanden Plas)에 의해 설계된 불타오르는 듯한 화려한 디자인으로 프랑스다운 매혹적인 차라고까지 평가받을 만큼 널리 알려졌습니다.

드라이에 135콘페디송 또한 1937년 자국 프랑스 그랑프리와 몬테카를로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뒤이어 밀리옹 콩쿠르에 우승해 상금 100만 프랑을 거머쥔 스포츠형 145(V-12 실린더 4.5ℓ 배기량 238마력 디용부 통 엔진 장착, 최고 시속 260Km)를 생산해 냈고, 1938년 르망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한 터닝 카 모델 165(V-12 실린더 엔진, 파리 오토살롱 출품)는 더욱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165를 기초로 해서 만든 아름다운 스타일의 165 피고니에 팔라시와 파리 및 뉴욕 오토쇼에 전시되었던 1939년형 로드스타 165 등 안락하고 정교한 드라이에 라인은 유럽 지형에 적합하게 밝고 고운 색상을 도색해 제작된 산뜻한 차들입니다.

그 후 135M의 완성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결정판 135MS 피고니에 팔라 시가 나왔습니다. 그 외 특별히 제작된 것도 있었는데 그것은 1947년 피고니와 팔라시에 의해 출시되었던 135M피고니에 팔라시는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 알리 칸이 영화배우 리타 헤이워드를 위하여 주문한 모델입니다. 드라이에사의 모든 모델 중 가장 아름답고 가장 멋졌으며 가장 유명하였습니다. 모두의 입에서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만큼 매력적이었던 이 차의 보디는 전부 알루미늄으로 덮여 있었기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받았습니다.

 

 

드라이에의 황금기 

 


당시에 가격 역시 정해져 있지 않았고, 최고의 경매가를 부른 자만이 이를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마치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성장한 드라이에는 '꿈에 그리던 차'가 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직접 운전하고 싶은 차',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사하고 싶은 차'와 같은 이런 재미난 말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4개의 바퀴 위에서 느껴지는 자유와 자동차보디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은 애호가는 물론 보는 이의 마음마저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눈부신 곡선의 예술을 창조해 냈던 코치빌더로는 최고의 전통을 자랑하는 마차 공방의 앙리 라브르테트(Henri labourdette)를 비롯해 소니아 드라우내, 앙리 벵델, 당노프, 바이안, 앙리 샤프롱, 반댄 프라스 등의 인재가 있어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에 의해 정말 자동차가 예술가의 작품으로 인정받던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프랑스 차들의 매혹적인 유선형은 전세계에 전파돼 고전형을 고수하는 롤스 로이스마저 자극을 받아 에어로 쿠페형을 탄생시킬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한 브랜드 측의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보다 판에 박힌 듯한 외형에 싫증을 느낀 구매자들의 의지가 만든 결과였습니다. 구매자들은 그동안 동경하던 마차에서 볼 수 있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주문 사항에 반영하였습니다. 당시 고객들은 제작자보다 더 과감한 요구를 해왔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사치스러운 차일수록 부드러운 곡선을 갖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