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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자동차 이야기

프랑스 자동차의 역사, 아메데 볼레

by 핑크맨 2021. 8. 30.

1878년 만셀 (아마데 볼레 제작)

 


-가솔린 자동차 이전

 

 

과거 20C에서 현재 21C세기까지 기본적으로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가솔린과 디젤 엔진으로 움직이는 것이 기본입니다. 지금은 자동차 원료로 화석연로가 쓰이면서 가스나 미세먼지 문제가 언론에서도 다뤄지면서 자동차 업계에서도 전기차 생산 쪽에 힘을 더 쓰는 상황입니다. 


자동차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초창기에 자동차는 지금과 다르게 다양한 형태를 동력원으로 썼습니다. 제일 먼저 사용 된 동력은 바로 증기 기관이었습니다. 영어로는 Steam Engine입니다. 1705년 경 토마스 뉴커먼이 처음 개발에 들어갔고, 다음으로는 제임스 와트가 수정 보완해 완성한 것입니다. 이 증기 기관은 당시 동물이나 사람의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닌 온전히 기계를 사용한 동력이라는 점에서 센세이션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초기에 태동을 했고 곧 이어 유럽 전역으로 산업 혁명이 퍼지면서 발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공장에서 가장 먼저 증기 기관이 사용되고 범용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동 수단으로까지 퍼지게 됩니다. 땅에서 움직이는 이동 수단은 근대까지 철도를 바탕으로 이동하는 기차가 상용화되는데 이 증기기관이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증기 기관은 말이 끄는 마차에도 확장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야기 나눌 인물도 이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발전의 시초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아마데 볼레

 

 

프랑스 초기에는 자동차 제작을 하려는 시도가 모든 부문에서 선두를 차지 할 정도로 상당히 적극적이었고 그 출발도 의욕적이었습니다. 특히나 증기 자동차 부분에 있어서는 그 진가가 발휘되었습니다. 또 유연하게 운영하였기에 대중으로부터 큰 찬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시절 자동차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은 아메데 볼레입니다. 사실 이 기술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가 가진 증기에 대한 집념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르망의 어느 주조를 가업으로 하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는 집안일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교육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주물을 다루는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났습니다. 이점이 나중 그의 아버지가 병으로 작업장을 떠나게 될 때 종의 음색 연구에 착수했고, 입증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 종 주조 뿐만 아니라 그 당시 큰 관심을 끌었던 말없이 탈 수 있는 새로운 이동 수단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후 증기를 동력원으로 움직이는 증기차의 보일러를 만들어서 마차 위에 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과거 마차의 조향 장치처럼 피봇을 이용한 방법은 증기차로써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 이유로 작동하기도 어려웠고 또 곡선 통과를 할 때는 바퀴의 회전수 변화도 마차와는 다르게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앞 바퀴는 체인으로 연결시켜서 움직이게 했고 뒷바퀴는 각각의 구동 피스톤에 설치해서 곡선을 통과할 때 내측과 외측 바퀴의 구동력을 조절하도록 했습니다. 지금의 무한궤도와 정말 비슷한 차동방식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결국 1873년 1월 첫 번째 6인용 합승차를 완성하게 됐습니다. 전륜은 서스펜스 식으로 독립되도록 만들었고 변속도 가능했습니다. 최고 시속 또한 45Km까지 부드럽게 달렸지만 약 50Km마다 물 460L를 보일러에 채워야 했습니다. 이런 불편한 점과 중량이 3 톤으로 무거운 것이 단점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시끄러운 석유나 가솔린 기관에 비교했을 때 조용했습니다. 이 덕분에 유순하다는 별명도 얻게 되었지요. 아무튼 이것을 계기로 증기 기관차 제작을 요청하는 주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4륜 구동동형에 최고 시속 44Km, 또 기관차인 관계로 대차 미다 독립 서스펜스를 설치해서 레일의 직접적인 충격을 완화시키는 성과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것 역시 무게가 많이 나가는 이유로 실패로 돌아갑니다. 

 

 

-만셀의 개발

 


그런 뒤 얼마 후 1878년 가벼운 차 만셀(Mancelle)을 만들었습니다. 이 자동차는 보일러를 줄인 것 외 앞 차축에 가로로 겹판 스프링을 설치했습니다. 전보다 조금 개선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차에 대한 주문은 들어오지 않았고 지속적인 연구자금만 필요하게 되는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종 만드는 사업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 1885년 이 지방 귀족으로부터 증기 합승 차 제작을 의뢰받게 되었습니다. 18세 되는 그의 아들 피스와 함께 이 일을 착수했는데, 증기 자동차 제작에 관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 무렵 아들 피스는 증기 기관보다 효율이 좋은 가솔린 기관을 더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설득시키려 애써 보지만 물려 받은 주조 사업을 고집하는 아메네는 증기 기관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자적인 가솔린 엔진 제작을 시행했지만 가솔린 기관은 증기 기관과 달리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출력이 나은 새로운 동력원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연구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증기 기관의 유연성을 주장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르게 됐습니다. 그 결과 1895년 6월 17일 파리 ~ 보르노 간 1175km의 자동차 경주에 아메데 볼레와 그의 둘째 아들 레옹은 낡은 증기자동차로 출전시켰습니다. 당연히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이 경주에서 가솔린 기관의 우수성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피스는 엔진을 구입해 몇 대의 경주용 차와 2인승 3륜 차 보아 트로트(Voiturett. 3마력 수랭식. 단기통 벨트 구동형 3단 변속, 최고 시속 약 30Km)를 만들어서 마르세이유 레이스와 1898년 100Km 레이스에 출전하여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 그 후 레옹은 1910년대 중반까지 4륜 차와 고급 리무진 등 제작에 관여했습니다. 결국 아메데 볼레는 가업인 종 만드는 일을 하다가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 후 발명되기 시작한 가솔린 엔진으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증기 자동차는 위협 받기 시작합니다. 1차 세계 대전을 전 후로 해서 내연 기관 자동차의 성능이 급격히 좋아지면서 1930년 대를 기점으로 증기 자동차는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