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다시 얻은 벤츠
지난번 이야기에서 전 재산을 투자해 특허까지 땄지만 언론의 비판에 벤츠의 아내는 화가 났습니다. 당시에 자동차를 위한 길이 없었지만 그녀는 지리에 밝지 않았지만 홀로 운전을 했습니다. 연료가 떨어지면 화학 약품상이나 약국에서 휘발유를 사 넣어 다시 운전했다는 자체가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벤츠의 아내는 결국 해냈습니다.
벤츠는 여기서 다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실의에 빠진 자신에게 다시 힘을 준 아내 베르타의 내조 덕이 컸습니다. 수냉식 수평 단기통 0.8마력 384cc 엔진. 그리고 250 RPM. 최고 시속은 16Km, 중량 250Kg, 이 차는 2인승 가솔린 자동차 최초였습니다. 이 가솔린 자동차는 아직 개발 초기라서 미흡한 부분은 많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다이믈러는 벤츠의 자동차보다 안정적인 4륜 차를 선보였습니다.
그때부터 생산과 판매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벤츠가 먼저 사세확장을 위해서 출자자를 찾게 되고, 1890년 프리드리히 폰 피셔와 줄리우스 간스를 공동 경영자 임명하고 자금 조달에 힘쓰게 됩니다. 그 해 벤츠 자동차 제작소의 직원은 50명으로 늘어났고 4륜 빅토리아호 (단기통 배기량 2.5L 4.5마력)를 필두로 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1893년까지 모두 69대를 생산했습니다. 그 후 성장을 거듭하며 많은 기술자들을 배출하게 되는데 그 중 호르히(Horch)와 아우디(Audi)의 창시자인 아우구스트 호르히(August Horch)도 초기에 잠시 직원으로 함께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후 기반을 굳히자 1899년 주식회사로 떠나게 됩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탄생
미국, 헝가리, 벨기에, 프랑스, 오스트리아 곳곳에 독점 판매권을 갖기 시작하면서 벤츠는 앞으로 생산될 신 모델의 이름을 고민했습니다. 자신의 딸 마야(Maja)와 메르세데스(Mercedes) 중 어떤 이름으로 붙일까 생각했고, 마야라는 이름보다는 스페인어로 '행운'을 뜻하는 메르세데스로 이름을 결정지었습니다. 그 이름은 1902년부터 쓰이기 시작합니다. 메르세데스의 성능과 우수함이 널리 알려지면서 판매량은 나날이 증가해갔고 벤츠의 자동차가 출전하는 경주마다 우승을 차지하면서 프랑스 자동차 클럽에서 “메르세데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라고 입을 모을 만큼 성과는 대단했습니다.
사실 초기 만들어진 차종들이 다양하기는 했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공통적으로 보면 여전히 말이 끄는 마차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더 많은 발전이 진행되고 기술의 혁신에 따라 일반 차량보다 경주용 차량에 더 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마이바흐가 설계한 6L 35마력 짜리 신형 피닉스호입니다. 1901년 니스 스피드경주에서 시속 85Km라는 기록을 수립하게 됩니다. 이 차에는 수동 조작의 조속기 레바가 있어서 300~1000 RPM까지 기관 회전수 조절이 가능했고, 개량된 기화기와 마그네틱 점화장치, 최초로 강철 프레임 그 외 클러치, 변속기, 브레이크 등이 새롭게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다음 해 40마력형이 나오고 1903년 걸작 60마력 (4실린더. 2중 점화 플러그 사용. 배기량 9.2L)과 더욱 강해진 90마력이 다투어 자태를 뽐냈는데 먼저 60마력은 드라이버 윌리암 키삼반드빌트가 운전해 비공인 시속 111.08Km를 기록했고 90마력은 1904년 다이토나 비치에서 시속 148.5Km란 공인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스피드 경주의 강자가 되다
기록경주 뿐만 아니라 각종 스피드 경주에서도 우승하자 메르세데스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경주가 끝나면 화려한 승용차로 변신해 구매자들을 유혹했습니다. 그 후 프랑스 그랑프리가 유럽제일의 경주로 정착될 무렵인 1908년 13L의 큰 엔진으로 출전해 우승했습니다. 혁명적인 메르세데스의 출현 이후 자동차의 성장은 급속히 이루어져 기술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당시 거대한 배기량의 엔진은 그 우수성을 인정받기 위해 경주 성적으로써 성능을 평가받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울러 두 메이커에서도 나름대로 고객을 확보할 무렵 자사를 보여줄 수 있는 트레이드 마크가 필요했습니다. 1909년부터 다이블러사의 지붕에는 세 갈래 빛의 별이 솟자 벤츠사에서도 월계관을 라디에이터 앞에 붙였습니다.
한편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벤츠사는 한스 니벨(Hans Nibel)이라는 설계자를 영입하고 가장 진보된 모델을 등장시켜 최고의 전통을 자랑했습니다. 브리첸(번개) 렌즈가 그것이었는데 이 차는 1908년형 차대 베이스에 OHV 작렬 4기 통의 담 보스급 엔진 (21.5L 배기량)을 장착한 체인 구동 식이 었습니다. 최고 1600RPM시 200마력의 힘을 발휘했습니다.
-세계 최초 200Km/H 달성
이듬해에는 영국 브루클랜드 1 mile 스피드 시험장에서 세계 최초로 200Km/H를 돌파 202.6Km/H를 달렸고, 1910년 장소를 옮겨 다이토나 비치에서 조종사 바니 올드필드기 210.8Km/H의 기록을 깨게 됩니다. 계속해서 1911년 봅 버맨은 시속 226.7Km라는 경이로운 속력을 기록하여 마침내 메르세데스의 주도권을 빼앗는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가 되었고 이 기록은 13년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이 속력은 당시 비행기보다도 빨랐습니다. 실제 비행기가 200Km/H를 넘어선 것은 1913년 이후였습니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비행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대항해서 메르세데스도 1912~13년 미국 반드빌트컵 대회 연속 우승을 했고 1차 세계대전 직전 항공기 엔진을 탑재한 4기 통 4483cc, 115마력, 최고 시속 80Km의 그랑프리 호를 출고시켜 1914년 프랑스 그랑프리와 1915년 인디아나 폴리스 경주를 승리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독일은 유럽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엔진 분야에서 크게 돋보였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벤츠에서 만든 엔진으로 장착한 자동차가 각종 경주에서 등장했습니다.
'세상의 자동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 자동차의 역사, 아메데 볼레 (0) | 2021.08.30 |
---|---|
오펠 자동차의 출발, 성장 이야기 (0) | 2021.08.28 |
독일 자동차의 아버지, 다이믈러와 벤츠 (0) | 2021.08.26 |
2021 벤츠 크로스오버 내부 보기 (0) | 2021.05.18 |
기대감 주는 2022 현대 아이오닉5 (0) | 2021.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