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의 시작
자동차의 발명이 독일인의 두뇌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자동차의 실용화는 프랑스인의 남다른 감각적 재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프랑스의 브루뇨 비란크로에 사는 부유한 직물상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루이 르노(Louis Renault)는 어려서부터 공부보다 기계 만지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르노는 자신의 아버지의 뜻과는 정 반대로 성장하였고, 동력기관에 대한 원리를 알고 싶어 파리에 있는 세르폴 증기 회사를 견학하였던 것이 그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14살이 되던 해, 르노는 아버지에게 부탁하여 중고 파나르 르바샤르엔진을 구입하였습니다. 정원 뒤에 있는 작업장에서 이 엔진을 분해하고 조립하며 일과를 보낼 만큼 몰두하였습니다. 르노의 작업장은 보일러, 다용도 공구, 선반 등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르노는 군 복무를 치러야 했기에 잠시 그의 관심사를 뒤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대를 전역한 르노는 중고 2마력 짜리 디용부통의 공냉식 3륜 차를 구입하였습니다. 르노는 이 3륜 차의 미흡한 점을 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3륜을 4륜으로 개조하였고, 변속기어도 1단을 높인 3단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벨트와 체인구동방식 대신할 축이 직접 구동하는 방법을 창안해냈습니다.
르노는 이 기술들을 특허 받았고, 동시에 그의 업적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되었습니다. 르노의 특허 기술은 모든 자동차 업계가 도입하여 충실한 동력 전달을 전달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1898년의 크리스마스 이브날, 12월 24일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함께한 자리에서 르노는 손수 개조한 차의 성능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바람을 가를 듯한 속도였던 시속 약 50Km로 달려가는 차를 본 아버지의 공증인 디옹은 매우 마음에 들어 하였습니다. 디옹은 그 자리에서 금화 40프랑을 주고 이 차를 사 갔으며 바로 12대의 차를 주문받게 됩니다.
르노의 설립
르노의 형(Fernand, Marcel)은 막내동생 르노의 재능을 발견하고, 동생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1899년 2월 브루뇨 비란크로에 르노자동차 회사를 설립합니다.
르노의 등장은 곧 프랑스에서도 대량생산 시대가 왔음을 예고하였습니다. 특히 차의 성능에 관심을 갖게 된 구매자들의 니즈에 따라 대부분의 제작자들은 스피드 기술에 열을 올렸습니다. 자동차가 완성되면 속도를 증명해내기 위하여 레이스 경주에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르노 또한 레이스경주에 출전하였습니다. 1899년 파리-툴루즈-파리 경주와 1900년 경주에 출전하여 첫 입상을 차지했습니다. 르노는 계속해서 1901년 파리-베를린에서 2위를 차지하였고, 1902년 파리-비엔나 경주에서는 형 마르셀이 운전한 르노가 1위로 들어왔습니다. 그다음 해에는 파리-마드리드 간 경주에 마르셀과 루이 르노가 함께 참가하였습니다. 하지만 형 마르셀은 보르도 대참사라고 알려진 이 경기 도중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게 되지만 동생 루이는 끝까지 완주해 3위를 하였습니다. 경주가 끝나고 형의 사고를 접한 루이는 슬픔을 잊지 못하여 이 사건 이후 어느 경주에도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르노자동차는 1906년 제1회 자동차 클럽 그랑프리(ACO)가 르망에서 열릴 때 헝가리사람 시스(Szisz)를 드라이버로 내세워 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이 대회에서 직렬 4기통 13리터 105마력의 르노 자동차로 경주하여 이틀 동안 1248Km를 평균 시속 101Km로 달리는 기력을 보여주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자동차 경주는 1910년까지 참여하였고, 그 후부터는 주로 대중적인 차 생산에 전념하였습니다.
르노 자동차의 대중화
대중차로 등장한 르노의 경제적인 모델 AG는 저렴한 가격 때문인지 출고와 동시에 환영 받았습니다. 1905년 제작하였고 2기통 1600cc, 12마력 최소 시속 55Km의 속성을 가진 AG는 파리 택시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이후에 1912년 모델 AX와 1928년 모델 KZ까지 나올 만큼 많이 팔려 르노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중 몇몇 대는 지중해의 여러 나라 귀족의 주문이었으며 주문생산 방식으로 팔렸습니다.
르노의 명성이 널리 퍼질 무렵 유럽지역은 전쟁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1914년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르노는 택시 1천여대로 4000여 명의 군인을 실어 전선으로 이동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군수품인 전투기 SPAD XIII에 탑재될 비행기 엔진과 탱크, 트럭 등을 생산하였습니다.
세계에 명성을 알리던 르노도 탱크 제작에 있어서는 당시 포병부대장 에띠엔느(Jean B. Estienne) 장군의 명령을 따라야 했습니다. 당시에 완성된 탱크가 샤아르였습니다. 이 탱크는 크고 무거워서 격파당하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르노가 구상해낸 모델은 작고 기동성 있는 F.T탱크였습니다. 르노의 탱크는 시속 8Km에 대원 2명을 태울 수 있었으며, 대포 1문, 중량 7t의 속성을 지녔습니다. 이 F.T탱크는 1918년 3월 전선에 보내졌고, 매우 반응이 좋아 전쟁터에서 크게 활약했습니다.
이 F.T탱크 모델은 전쟁이 치뤄지는 동안 3천대가 생산되었습니다. 역사상 '기계들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한몫 한 이 F.T탱크는 전쟁이 끝나자 영웅이 되었으며 군사 박물관에 전시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자동차 제조는 이제 최대의 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르노는 출생 도시인 브루뇨 비랸크로를 자동차 도시로 변화시킨 장본인입니다. 르노는 3만 명의 고용자와 1년에 차 5만 대를 생산하여 유럽 제일의 생산국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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