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의 천부적 재능
프랑스 자동차공업이 이렇게 성장하게 된 것은 대랑생산체제의 도입도 있겠으나 그보다 두 사람의 치열한 경쟁이 가져다 준 결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르노와 시트로엥의 경쟁입니다. 기계 천재였던 루이 르노는 어릴적 꿈을 이루었고, 수줍음이 많고 겸손한 품성을 지녔습니다. 또한 보수적인 기술자였기에 세속적인 쾌락과 떠들썩한 선전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기계에 대한 르노의 천재적 재능은 어느 한곳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번은 크랭크축이 깨져 문제를 일삼자 크랭크축을 더 강하게 만들어 대치하였으나 또 깨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르노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크랭크축의 도면을 가리키며 크랭크축이 더 강하게 만들수록 점점 진동의 중심폭이 커져 균열이 생기는 부분을 지적하였고, 크랭크핀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르노의 의견대로 크랭크핀의 무게를 줄이자 그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무런 계산 없이 직감적으로 알아냈던 것입니다.
르노 자동차의 발전
대중적인 자동차를 생산해내던 르노도 대통령 스포츠맨 신사를 위하여 사치스런 모델을 생산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르노 40마력'은 르노 상품 중 최고였으며 알베르 르브랭 대통령의 애마가 되었습니다. 이 르노 40마력은 내구력시험을 위하여 스피드경주에 참여하였습니다. 24시간 달리는 유명한 몽랠리 경주에서 정예의 드라이버와 정비사를 대기시켜 교체하면서 여러 부문 세계신기록을 깼습니다. 최고시속 173Km 속도로 4천Km를 밤낮없이 달린 것입니다. 르노 40마력은 67Kg의 가벼운 보디제작을 위해 인조가죽으로 덮였었습니다. 하지만 이 차의 기록은 다시 영국의 벤트리 30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그리고 1927년 쯤 강력한 라이벌 시트로엥이 대륙횡단을 시도하려던 때에 르노도 아프리카 대륙탐험에 빠져들었습니다. 르노는 나름대로 실리에 밝았던 사람으로 기록이나 선전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자동차를 아프리카 사하라사막에 보낸 것은 교통이 불편한 지중해와 니제르사이에 정기 자동차 노선을 설치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제작된 8인용 버스로 사하라사막 횡단 교통 회사를 창설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아프리카에는 비행기보다 더 빠르게 자동차가 30년 동안 유일한 교통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교통 사업은 너무 힘들고 피로하였기에 그 후 얼마지나지 않아 철수하게 됩니다. 1930년 르노는 현대적인 일관작업을 도입하였습니다. 4기통에서 8기통까지 다양한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4기통 70의 르나르를 출시 한 이후에 3년뒤에는 비바차를 출시하면서 30년 동안 파리의 거리를 질주했습니다. 비바차 중 몇대는 100만Km를 돌파하여 그 우수성과 내구성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1934년에는 크라이슬러의 에어플로 데소토모델이 나왔던 해입니다. 이 해에는 르노에서 프랑스 최초로 실험적인 유선형 스타일의 차였던 네르바스텔라(Nervastella)를 만든 적도 있습니다. 1937년에는 미국 소형차와 비슷한 외형을 가진 쥬바6(Juvaquatre)을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자동차 제조는 이제 프랑스 최대의 공업이 되었습니다. 1년에 20만대 이상 제조하였고, 20만여명의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습니다. 프랑스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생산국이 되었습니다.
르노의 말년
그러던 중 2차세계대전이 돌발하였고 독일의 침략으로 프랑스가 점령당하였습니다. 당시 일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르노 역시 기업을 지키기 위하여 전쟁 동안 독일 군수품을 생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종국에는 2차대전이 연합군승리로 끝나면서 다시 자유가 찾아왔을 때 르노는 독일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습니다. 르노가 투옥되고 한달 후에 감옥에서 숨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말년이 비극적이었던 르노의 인생은 6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기계의 천재였던 루이 르노에 대한 기록을 한 영화는 한편도 없었습니다. 고작 몇게 남은 사진만이 전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르노의 공장은 프랑스의 국유화가 되어 살아 남았고 이후에도 번창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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