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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자동차 이야기

프랑스 자동차 역사 스페인 제작 히스파노 수이자

by 핑크맨 2021. 9. 8.

히스파노 수이자(HISPANO SUIZA) 엠블럼

 

 

스페인의 브랜드 히스파노 수이자(HISPANO SUIZA) 프랑스에서 유명해지다

 

 


전통적인 고전 스타일을 가진 고급 승용차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한 예가 바로 스페인의 히스파노 수이자(Hispano Suiza)입니다.

히스파노 수이자라는 브랜드는 스위스의 천재적인 기술자 마르크 빌키트(Marc Birgkit)와 이태리 출신 기술자 폴 추카래리(Pual Zuccarelli)가 설계 및 기술을 맡았으며, 스페인이 재정을 담당하여 만든 공동작품입니다. 자동차의 최정상을 판가름을 지었던 아주 유명한 차입니다.

스위스 기술자 마르크 빌키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고 기계기술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스페인에 건너갔습니다. 1899년 스페인 최초의 자동차 회사 라 콰도라에서 설계를 맡았습니다.

히스파노 수이자라는 명칭은 두 단어의 조합입니다. '히스파노'는 스페인을 뜻합니다. '수이자'는 스위스의 옛말입니다. 이 자동차 회사는 1904년 스페인의 항구도시 바르셀로나에서 발족하였습니다. 그 해에 제작에 들어갔으며 1906년 첫 파리 모터쇼에 4기통 3.7ℓ 엔진을 실은 프로토타입의 시작차 2대를 전시했습니다. 그다음 해에는 엔진과 기어박스가 일체로 된 6기통 7.5ℓ 엔진의 자동차를 선보였습니다. 이 차는 도로상의 주행성이 탁월하였고 기어 변속도 부드러우며 제동력 역시 우수해 출발부터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었습니다. 이 자동차의 엔진은 그 후 영국의 고급차 브랜드였던 나피에사도 수입해 갈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히스파노가 최고의 명성을 떨친 곳은 스페인이 아닌 프랑스에서 제작된 모델이었습니다. 다른 최고급 차와 마찬가지로 사치스럽게 전부 수공예 작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가격은 천문학적 숫자였습니다. 당시 고가에 속한다는 롤스 로이스의 수십 배인 1000파운드였습니다. 비교가 안될 만큼 정성 들여 만들어졌던 이 모델은 특히 모든 부분에서 자신이 있었습니다. 고객이 제작과정 참여도 허락하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히스파노를 사랑한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

 


히스파노의 인기가 치솟을 무렵 자동차에 매료되어있던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는 자국에서 생산된 우수한 히스파노의 성능에 반하였습니다. 그래서 1909년 바르셀로나의 외곽지 시트케스에 226 mile의 카타란(Catalan) 컵 자동차 경주를 창설하였습니다.

히스파노 제작팀도 이 경주에 참가하기 위하여 T헤드 밸브 방식의 4실린더 엔진을 얹은 날렵한 차를 제작하였습니다. 이 자동차는 당시 강력한 외국 경쟁자들인 푸조, 디용부통, 나우딘(Sizaire Naudin),
르 구이(Le Gui), 베르너(Werner), 대미스터(Demeester)등과 대적하여 경주에서 싸웠습니다.

제1회 대회 때 우승은 푸조의 차지였으며, 히스파노는 4위에 머물렀습니다. 제2회 경주에서는 복수전이 펼쳐졌습니다. 기술자이었던 추카래리가 운전한 히스파노 쿠페가 우승을 차지하였던 것입니다. 히스파노 쿠페 스펙은 직렬 4기통, 배기량 2646cc였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자동차 경기규칙이 시행되었던 1910년 이후부터는 가볍고 성능 좋은 새 엔진 개발을 위하여 제3회 경주는 출전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 무렵 화가였던 아메데 오장팡(Amedee Ozenfant)이 설계에 참여하여 완성된 경량의 히스파노 수이자는 설계자의 이름을 붙여 히스파노 오잰판트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프랑스 푸조사는 엔진 제작 기술자가 필요했습니다. 히스파노사의 신형 엔진 제작 소식을 듣은 푸조사는 곧바로 핵심 기술자인 추카래리를 스카웃해갔습니다. 이로 인해 푸조사는 연구 개발 중이었던 혁신적인 흡기, 배기 방식인 DOHC 엔진을 히스파노보다도 먼저 완성해 발표할 수 있었고 1912년 세계 최초로 DOHC를 세상에 탄생시켰습니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히스파노의 기술자 마르크 빌키트는 1913년 최초로 과급기를 장착한 스포츠카를 출시하였습니다. 그 이름도 찬란한 자동차광 알폰소 13세의 이름을 따 만든 이 스포츠카는 4기통 3620cc, 64마력, 중량 660Kg의 스펙을 자랑합니다. 스페인의 알폰소 13세는 히스파노를 너무나 사랑해서 황실 전용차를 히스파노로 바꿀 정도였으며 모두 30여 대를 소유하였습니다. 엔진과 기어박스를 일체식으로 만들어서 부피를 줄인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압축펌프를 흡입 측에 설치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과급기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당시에는 매우 놀라운 발상이었습니다.

여기서 과급기, 슈퍼차자, 터보차자 등으로 불리는 이 시스템은 고속 회전 시 부족한 공기량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하였습니다. 작동방식으로 공기압축기를 사용한 것 외 배기가스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즉, 배기밸브 측에 터보차자를 부착하였고 배기가스 분출의 힘으로 작은 터빈을 돌리면 연결된 반대쪽 흡입 측에도 터빈이 있어 흡입 측에 밀도 높은 압축공기를 공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과급기를 설치한 차는 1908년 미국차 Chadwick이었습니다.

히스파노사는 경쾌한 주행의 소형 스포츠카 생산을 멈추고 한동안 경주에서 참석하지 않으며 승용차 제작에만 전념하였습니다. 1차 대전 동안은 스페인 정부의 요청에 따라 유명한 150마력 V-8실린더 히스파노 항공기 엔진을 생산했습니다. 최고 시속 210km를 자랑하는 마르크 빌키트가 설계한 이 항공기 엔진은 각 실린더를 물 재킷과 일체로 주조하였으며 특이한 점은 캠구동으로 개폐되는 흡기, 배기 밸브의 작동 소음마저 줄이기 위해 2중 커버의 얇은 강제 기통동을 끼워 넣은 것입니다. 당시에 매우 획기적인 엔진이 탄생된 것입니다. 이것은 전면 투영 면적이 작아 항공용으로 적합하여 연합군이 생산한 엔진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판이 좋았습니다. 이 엔진 생산 공장만 해도 5600대 생산 전투기 스파드에 탑재한 프랑스에 14곳이 있었고, 200대 SE5에 탑재된 영국에는 7곳이 있었습니다. 그 외 미국, 이태리 등지에서 생산되었고 총 5만여 대가 군수품으로 납품되었습니다.

 

 

히스파노의 전시 업적

 


전시 중에 히스파노 항공기 엔진을 장착한 연합군 전투기는 1차 대전 중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평화를 맞았을 때 히스파노의 최신 모델을 구경하러 온 자동차광들을 위해 파리 살롱 전시장에 내놓은 모델은 야외 드라이브용 시리즈인 H6, HGB, H6C로 제동력이 뛰어난 최초의 4륜 디스크 제어 브레이크를 갖추고 있었으며 알루미늄 합금 실린더의 워터 재킷 부식 방지책으로 특수 도장과 동절기 시동 배터리의 쇠약을 대비해 예비 배터리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4륜 디스크 제어 브레이크의 제동 방식은 워낙 우수하여 이후에 롤스로이스사를 비롯해 많은 유명 자동차 브랜드도 이 특허권을 사들였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히스파노 브랜드를 더욱 돋보이게 할 나는 황새 모양의 장식품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격추왕 조르쥬 기느메르(Georges Guynemer)가 이끄는 비행중대의 마크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중 주력 전투기 스파드(최고시속 200Km)를 타고 독일 전투기 타우베(직렬 6기통의 다이믈러 엔진 장착)나 알바트로스(160마력 최고 시속 175Km)를 무려 53대나 격추시킨 유례없는 공중전을 상징하기 위해 히스파노 수이자의 엠블럼으로 발동기 덮개 위에 장식되었습니다. 바로 이 황새의 엠블럼을 달고 나타난 차가 1925년에 특별히 제작된 히스파노 수이자입니다. 프랑스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마차 공방 앙리 라브르테트에서 디자인하였습니다.